
처음하는 '사설 쓰기'에 너무 긴 글을 선택해버렸다.
이웃에게 선행을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. 유발하라리의 '사피엔스'에서 어둠의 장막을 이용하면 보편적인 선과 법을 정 할 수 있는데, 그 법칙이 생각났다. 내가 한국이 아닌 빈곤국에 태어났다면 선진국의 몰상식을 욕했을 것이다. 그리고 그러한 슬픈 운명을 받아들였으리라..
미국이 지금의 선진국이 된 것도 '운'이고, 내가 지금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'운'이다.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'무지' 하듯이 눈먼 국가의 선택을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.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'나', 오직 강요할 수 있는 존재인 '나'의 변화만이 기대 할 수 밖에..
톨스토이의 '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' 에서 가난한 이웃, 병자로 변장한 천사의 그림이 생각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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